[국민일보][월드비전 60년 밀알의 기적] (3) 가정복지 사업

by 김진아 posted Dec 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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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끊자” 1970년대 확산… 도시서민에 희망선물

병석에 있는 남편, 두 아이와 함께 어렵게 생활하고 있던 김경옥씨. 재봉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던 그녀가 월드비전을 만난 것은 1985년 출석교회 목사님을 통해서이다. 월드비전은 김씨에게 재봉틀을 구입, 자립할 수 있는 밑천을 지원했다. 김씨는 이 재봉틀로 집 한쪽에서 동네에서 들어오는 양복수선을 하게 됐다. 김씨의 바느질 솜씨가 점점 알려지면서 일거리가 많아졌고 자립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 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은 월드비전 가정개발사업장을 통해 여러 후원을 받게 되었고 앞길이 보이지 않던 가정이 점점 살아나게 되었다.

월드비전은 70년대에 아동과 그 가족들이 빈곤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전체와 함께 일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동과 그 가족들에게 직업교육과 농업교육을 하고, 협동조합을 통해 농사를 짓고 수입을 얻도록 옆에서 도왔다.

이에 따라 국내 월드비전의 아동 결연사업 내용도 변화했다. 69년 2월, 서울 신월동 지역의 도시 빈민가정을 돕기 위해 가정복지사업을 시작하면서 수혜대상을 시설아동에서 점차 가정이 있는 아동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월드비전 한국은 74년 성남시 사회복지관 설립을 필두로 76년 이후부터 춘천, 대구, 거제도 등에서 가정복지사업을 실시했다. 또 이 외에도 의료사업과 문화사업, 한센병 퇴치사업, 정착촌사업, 교육 및 장학사업, 직업보도사업 등을 계속적으로 실시했다.

70년대 월드비전은 토착화의 길을 모색했다. 도시화로 인해 빈곤가정 아동의 문제가 새로이 대두되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가정복지사업을 시작한 것. 73년 최초의 한국인 회장으로 이윤재씨가 취임해 78년부터 국내후원자 결연사업을 시작했으며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노력했다. 80년대에 이르러 월드비전은 빈곤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 단위를 넘어 그 지역사회까지 돕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가정복지사업을 지역사회까지 포괄해 사업을 진행했다.

81년 4월, 강원도 평창의 산간마을을 시작으로 농어촌 지역에서 주로 실시된 지역사회 개발사업은 전국 46개 지역으로 늘어났다.

월드비전은 마을마다 마을개발위원회를 조직해 지역주민 스스로가 지역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5개년 장기적인 사업목표를 세워 주체적으로 사업을 실시하도록 도왔다. 이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지역 자원을 개발, 자립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사업은 80년대 후반 ‘대단위 지역사회개발 사업장(ADP:Area Development Project)’을 중심으로 한 변화를 가져오는 개발사업(transformational development)의 개념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지역개발사업은 오늘날 국제개발사업에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이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기적을 일군 바탕에는 이러한 개발사업이 있었다.

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