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아이티 다녀온 한국대표 어머니 김혜자

by 김진아 posted Jul 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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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아이티 다녀온 한국대표 어머니 김혜자

 

“너무 처참해 눈물조차 안 나오더군요”
머나먼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 … 머리로는 도울 수 없어요
아이티 다녀온 한국대표 어머니 “너무 처참해 눈물조차 안 나오더군요”

 



지난 4월 아이티를 방문한 김혜자씨가 포르토프랭
스 난민 캠프에서 현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정우철 제공)

 
한국의 대표 어머니 김혜자. 그녀가 지난 4월 말 중미(中美) 아이티를 다녀왔다. 19년째 친선대사로 일하고 있는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이 주관하는 구호활동의 일환이었다. 지진 참사 100일째인 아이티를 찾은 그녀는 “너무 처참해 눈물조차 안 나왔다”고 소회를 전했다. 김씨는 국내 연예인 중에서 가장 먼저 자선·구호활동에 뛰어든 사람이다. 91년 월드비전과 인연을 맺은 후 20여 개국을 다녀왔다. 결연을 맺은 아동도 전 세계 103명에 이른다. 최근 연예스타들 사이에 일고 있는 자선·기부 문화의 선구자인 셈이다.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만난 그녀는 전 세계의 모든 고통받는 아이들의 엄마 같았다.

 

글=양성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 직접 가보신 현장은 어땠나요.

 

 

인터뷰 동안 소녀 같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그간
만난 아이들 얘기를 했지만 미소 너머 눈 속 깊은
곳에는 슬픔이 배어 있었다.
 
“파키스탄 등 많은 지진 현장에 가봤지만 비교가 안 돼요. 일단 세 사람에 한 사람꼴로 죽은 거니까 (기자와 사진기자를 가리키며) 여기 우리 셋 중 한 명이 죽은 거지요. 거기에 제대로 된 나라에 살지 못하는 끔찍함도 느꼈어요. 국가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손을 놓은 채 밖의 구호만 기다리는 상황말이에요. 한 동네가 매몰됐는데 시신 수습은 하지 않고 그 위에 대충 철골 얹어 이재민 천막을 지었어요. 푹푹 썩는 시체더미 위에 지은 텐트라니…. 조금만 밖으로 가면 공터가 있는데, 부자들 소유라 정부가 힘을 못 쓴다네요. 그런 것까지 구호단체들이 해결해 주길 바라니, 이번 만큼 절망적이고 암담한 적이 없었죠.”

 

 

● 이번에도 많이 우셨겠어요.

 

“아니, 너무 끔찍하니까 아예 눈물이 나지 않데요. 아이티에는 구호단체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문제는 정신적 황폐함이죠. 비좁은 천막촌 안에 사람들이 득실대는데 서로 누가 구호물을 더 가져가나 눈에 불을 켜고, 살기가 등등하고, 폭발 직전의 위기감이 가득해요. 희망 없는 인간의 바닥을 본 느낌이었죠.”

 

● 아이들의 상황은 더 절망적이겠죠.

 

“하루는 어떤 남자 아이가 절 계속 따라오면서 어디로든지 데려가 달라는 거예요. 지진으로 고아가 된 소년이에요. 구호물로 연명은 하지만 어떤 미래가 있겠어요? 아이들이 전부 멍해요. 희한한 게 이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계속 태어난다는 거죠. 생명의 위대함, 신비로움과 함께 진저리처지는 느낌을 같이 받았어요.”

 

 

● 그런 곳을 떠나오실 땐 어떤 마음이실까요.

 

“귀국하기 전날 집이 폭파된 현장에서 죽은 아이의 영어노트를 주웠어요. 그날 밤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니 말이 안 나와요. 거의 반벙어리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죠. 그것도 뉴욕을 경유하는 노선이에요. 귀국해서 한참 앓았어요. 모두가 똑같이 잘살 순 없어도 적어도 인간 이하로 사는 사람들은 없어야 할 텐데…. 제가 그랬어요. 영어를 잘하면 유엔에서 연설하고 싶다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처럼 수줍은 사람이 그런 말을 했겠어요.(한숨)”

 

 

● 지난 2월엔 에티오피아를 다녀오셨죠?

 

“친선대사를 맡고 처음 간 나라였어요. 그때 갔던 콘볼차를 20여 년 만에 다시 가서 예전 가족들을 만났는데, 저를 기억하시더라고요. 살림이 많이 나아져서 식사 대접도 받았어요. 근데 이분들이 3만원 정도 하는 가축들을 기르는데, 그게 제가 18년 전 사서 드린 양과 소의 손자들이라는 거예요. 전 기억도 못하는 사소한 도움이 누군가에는 소중한 밑천이 돼서 집안을 일으킨 거죠.”

 

 

● 그런 게 나눔의 기쁨일까요?

 

“내겐 작고 사소한 일이 남에게 큰 기적을 일으키는 게 나눔의 힘이죠. 세상에, 3만원이에요. 단돈 3만원. 하지만 그 돈으로 제가 받은 기쁨은 300만원짜리 명품 가방에 비할 게 아니죠.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손발이 썩는 풍토병을 앓는 원주민들에게는 2000원짜리 신발만 사주면 병을 예방할 수 있어요. 2000원이에요! 이런 나눔의 기쁨을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도 일깨워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나눔이라는 게 절대 이기적으로도 손해보는 게 아녜요. 나누고 살면 누구보다 내게 좋고, 내 자식에게 좋은 일이에요.”

 

 

● 가끔은 국내에도 도와줄 아이가 많은데 왜 외국까지 나가냐고 하는 사람도 있죠?

 

“북한 얘기도 많이 하시죠. 답답한 게 북한은 돕고 싶어도 도울 길이 없어서 돕지 못하는 거예요. 98년에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고요. 월드비전이 우리 아이들도 많이 도와요. ‘사랑의 도시락’도 있고, ‘꽃때말 공부방’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우리 애들을 돕는 게 떠벌리고 생색낼 일은 아니잖아요? 당연한 거지.”

 

 

● 형편이 좀 나아지면 돕겠다는 사람도 많은데요.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가 뭔 줄 아세요? 머리에서 가슴의 거리예요. 머리로 생각하면 절대 못 도와요. 통장 잔고가 0원인데도 결연 아동을 돕는 떡볶이 장사 아주머니가 계세요. 내가 안 도와주면 그 애는 굶겠구나 생각하면 돕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TV 보면서 안됐다 쯧쯧 혀를 차고 마는 것과 1000원 ARS 전화 한 번 돌리는 것, 또 볼 때마다 돌리는 것은 큰 차이예요. 그런 방송을 본다는 것 자체도 중요하죠. 전 보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대본을 자꾸 보면 처음엔 안 보였던 것이 보이고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처럼, 어려운 아이들의 현실을 보고 관심갖는 것, 그게 모든 것의 출발이지요. ”

 

 

● 월드비전과의 첫 인연이 재밌던데요. 따님과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친선대사 제의가 왔고 아프리카로 가게 되셨지요?

 

“우연처럼 시작됐지만 우연이 아닌 것 같아요. 월드비전에 감사한 것이 이런 사랑에 눈뜨게 해줬다는 거죠. 제가 알려진 사람이니까, 저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구호·자선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신이 주신 소명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저는 일단 돈이 생기면 후원금부터 따로 모아요. 제가 돈이 없어져서 후원금을 못 내 면 어떻게 하나 걱정돼서죠. 그래서 월드비전에 2014년 후원금까지 맡겨놨어요. 제가 죽으면 우리 아들이 103명 후원을 물려받길 원하고요. 원래부터 다른 아이들을 위해 쓸 돈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안 아까워요.”

 

 

극중 인물에 너무 빠지는 게 장점이자 단점

 

 

‘마더’의 절망적 엄마로 사느라 진이 다 빠졌어요
잊을 만하니까 영화제·시상식 … 올 2월에야 떨쳐냈죠

 

 

●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끔찍하세요.

 

“어린 생명은 무조건 돌봐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1년에 많으면 세 번씩 아이들 보러 외국에 나가는데 어떤 분이 ‘혜자씨 그거 허영 아닐까’ 그러세요. 그래서 중독이면 중독이지 허영은 아니라고 답했죠. 전 복잡한 게 싫은 사람인데 단순하고 예쁜 애들은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고, 중독 맞아요(웃음). 어떨 땐 침실 천장 벽지 꽃무늬가 아이들 얼굴로 보이기도 한다니까요.(웃음)”

 

 

● 스타들의 자선·기부 문화의 선구자이십니다.


“저는 다작을 안 하는 편이지만, 한창 스케줄에 쫓기는 이들은 뜻이 있어도 시간을 못 내더라고요. 전 젊고 인기 있는 아이돌들이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처음 에티오피아 가서 오는 날까지 내내 울고만 다녔던 저처럼 그곳의 현실을 보고, 자신의 팬들에게 알려준다면 엄청난 변화가 생길 거예요. 아이돌이 청년·아이들 문화를 바꿨으면 해요. 패션에만 민감한 게 아니라 구호와 나눔에도 민감한 아이들로요.”

 

 

● 구호활동이 연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연기와 이런 활동을 분리하고 싶은데 잘 안 될 때가 있어요. 가령 드라마 속에서 아주 소소한 일상적 갈등을 연기하는데 그런 상황이 그저 하찮게 여겨지는 거예요. 그럼 연기가 흔들리니까 아주 위험하죠.”

 

 

● 영화‘마더’(2009) 때문에 상당히 힘드셨지요?

 

“내 장점이자 단점이 인물 속에 너무 빠져 잘 헤어나오질 못하는 거예요. 안 그래도 극중 절망적인 엄마로 사느라 진이 다 빠졌는데, ‘마더’ 꼬리가 너무 길었어요. 잊을 만하면 영화제다, 무슨 시상식이다, 올 2월 백상예술대상이 마지막이었다니까요. 힘든 것도 2월이 마지막 피크였던 것 같아요. 어쩐지 모든 게 다 끝났다 싶어서 주변을 정리하기도 했어요. 옷이랑 액세서리도 다 버리고, 사진도 다 찢고.”

 

 

● 드라마 ‘겨울안개’ 때도 후유증이 상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암에 걸린 역할이었는데, 한 1년간 빠져나오질 못했죠. ‘겨울안개’는 그밖에도 특별한 드라마예요. 새벽에 대본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대로가 펼쳐졌어요. 그때, 아 이제 나는 연기에 대해 다 알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죠.”

 

 

● 차기작은요?

 

“아직은요. 다만 크고 극적인 얘기보다는 평안하고 따뜻한 얘기, 일상적이고 소소한 작품을 하고 싶네요. 오랜만에 연극도 좋을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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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칵테일 >> 30여 년을 ‘우리들의 어머니’로



 
김혜자의 대표작이자 그녀에게 인자한 ‘한국적 어머니’의 타이틀을 안긴 것은 MBC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년)다. 22년간 방송된 이 드라마에서 정 많고 푸근한 ‘김 회장 부인’을 연기했다. 최불암(김 회장)과의 부부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실제 부인인 김민자 대신 김혜자를 부인으로 착각하는 이도 많다. 75년 시작한 ‘다시다’ CF도 한몫했다. “그래, 이 맛이야”라는 카피와 함께, 도시의 현모양처 이미지를 얻었다. 김혜자는 2002년까지 27년간 이 CF의 장수 모델로 활동했다.

 

 

 



 
TV 속 한국적 어머니의 이미지는 굳건했다. ‘사랑이 뭐길래’ ‘엄마의 바다’ ‘그대 그리고 나’ ‘장미와 콩나물’(MBC) 등 주말 가족드라마의 간판 어머니였다. 김수현·김정수 등 스타작가의 파트너이기도 했다. 2008년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KBS)에서는 평생 희생해 온 60대 주부의 가출이라는 파격적 면모를 선보였다. 83년 스크린 데뷔작인 멜로영화 ‘만추’나 남편의 불륜으로 고통받는 아내를 연기한 MBC 드라마 ‘모래성’ 등에서는 어머니의 얼굴을 지운 ‘여자’를 연기했다.

 

 

 



 
그녀가 연기한 새로운 어머니는 99년 최진실과 함께한 영화 ‘마요네즈’(윤인호 감독)였다. 딸을 질투하며 욕망을 드러내는, 이기적인 ‘민폐’ 엄마를 선보였다. 김혜자 자신의 한국적 어머니 이미지에 반하며 모성 신화를 흔드는 배역이었다. 그러나 이색적인 어머니 연기의 압권은 역시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동물적인 사투를 벌이는 파격적인 엄마였다. 그녀는 “엄마를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어떤 엄마가 나올까 궁금해 도전했다”고 말한다. 늘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그녀의 소름 끼치는 연기는 ‘마더’에서 탁월하게 발휘됐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9개의 상을 휩쓸었다.

 

 

 


 
 

전쟁과 재난, 가난에 허덕이는 제3세계 어린이 난민을 돕는 ‘월드비전’ 구호 활동은 그녀가 가진 또 다른 ‘엄마’의 얼굴이다. 2004년 그간의 구호 체험을 담은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했고, 10년간 인세 수익 전액을 월드비전에 기부했다. 그 인세는 북한 용천 열차사고 긴급구호와 강원도 태백의 ‘꽃때말(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공부방’을 세우는 데 쓰였다. 또 103명의 전 세계 아동과 결연해 후원하고 있고, 시에라리온에는 기술훈련센터 건립을 뜻하는 ‘마담 킴스 프로젝트’까지 있다. 라이베리아에는 4개의 고아원 건물을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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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의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올해 영문판이 나왔다. 이 책에서 그녀는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나눔이며, 사랑이 그 어떤 전쟁과 죽음보다 강하다는 걸 난 믿는다”고 썼다. 월드비전 후원 문의 02-784-2004, www.worldvision.or.kr